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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심리학

자존감이 낮을수록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 행동심리학으로 보는 경계 설정의 심리

by bearbombi 2025. 12. 8.

자존감이 낮을수록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 행동심리학으로 보는 경계 설정의 심리

 

1.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의 공통 패턴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실은 싫은데,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반복한다. 약속이 너무 많아 지쳐 있으면서도 부탁을 받으면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 마음에 걸리는 말투를 들었을 때도 “그냥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 순간에는 관계가 깨지지 않은 것 같고 분위기도 유지되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 서운함과 분노가 밀려온다. 이들은 스스로를 “착하다”, “배려심이 많다”고 설명하지만, 속마음에는 “갈등이 나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행동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패턴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된 ‘대인관계 전략’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싫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접적인 상황에서만 못 할 뿐, 머릿속에서는 상대를 수십 번도 더 향해 항의하고, 다른 친구에게 하소연하며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즉, 감정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 통로가 막혀 있는 상태이다. 겉으로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몸은 긴장하고 머리는 계속해서 그 장면을 되새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왜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했을까”라는 자기비난이 반복되고, 결국 “나는 원래 이런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신념이 굳어지게 된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이유 행동심리학으로 보는 경계 설정의 심리

2. 자존감과 조건부 사랑: 나를 지우고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안정된 감각을 가지기 어렵다. 스스로를 존중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서만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사람에게 ‘싫다는 말’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상대에게 실망을 주는 행동”, 더 나아가 “나를 싫어하게 만들 위험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으며 자란 경우,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행동과 ‘좋은 사람’이라는 정체감이 강하게 연결되기 쉽다. 그 결과,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을 경험한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이런 패턴을 ‘조건부 사랑의 내면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랑과 인정이 “내가 나여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실망시키지 않을 때만” 주어진다고 학습한 사람은 관계 안에서 항상 긴장하게 된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일 거야.” “싫다고 말하면 나를 덜 좋아하겠지.”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을 일관되게 우선하는 선택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나를 지키는 경계’보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게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3. 갈등 회피의 심리: 당장은 편하지만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냥 내가 조금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갈등을 피하는 것이 훨씬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지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이런 불편함을 ‘즉각적인 처벌’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즉각적인 보상’으로 볼 수 있다. 부탁을 들어주면 그 순간 상대는 고마워하고 관계가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뇌는 이를 “안전한 선택”이라고 기억한다. 이렇게 해서 “싫어도 수락하는 행동”이 반복적으로 강화된다.

하지만 장기적인 결과까지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음에 없는 동의를 반복할수록 관계는 겉보기와 달리 안쪽에서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다. 상대는 “이 정도는 늘 들어주던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거절을 못 하던 사람은 점점 더 지쳐 간다. 쌓이고 쌓인 피로감과 서운함은 어느 순간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면서, 관계를 한 번에 끊거나 상대에게 거친 말로 쏟아지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당장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 결국 더 큰 갈등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갈등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그 방식이 ‘나를 지우는 것’이 될 때 관계는 결국 더 불안정해진다.

 

 

4. 건강하게 거절하는 연습: 작은 ‘아니요’부터 허락하기


싫다는 말을 전혀 못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하게 경계를 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행동 변화는 언제나 작은 단위에서 시작될 때 지속되기 쉽다. 우선은 “나는 싫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라는 내적 허용이 필요하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자동으로 비난하는 대신, “내가 불편하면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문장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감정적으로 크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 비교적 가벼운 장면에서부터 작은 거절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말 가고 싶지 않은 약속에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해 보거나, 갑작스러운 부탁에 “지금은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해 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거절의 방식이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왜 맨날 나한테만 시켜?”처럼 관계를 공격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은 나에게 여유가 없어서 도와주기 어렵다”처럼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심장이 빨리 뛰고, 상대가 실망하지는 않을지 걱정될 수 있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을 지나면서 “생각보다 관계가 바로 깨지지 않는다”, “상대도 나의 경계를 존중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학습이 이루어진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자존감도 서서히 회복된다. 나를 지키는 선택을 했을 때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곧 자존감의 실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자존감이 높아져야 거절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거절을 허락하는 연습이 자존감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싫다는 말”은 관계를 끊는 선언이 아니라, 나와 너의 사이를 건강하게 조정하는 하나의 기술이다.